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릭 위날다 (문단 편집) === 프로 경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ynalda_1.FC Saarbrucken.jpg|width=100%]]}}} || 대학을 졸업한 위날다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 월드컵]] 본선에 앞서 미국 축구 협회(USFF)와 계약을 맺는다. 대회를 마친 뒤 그는 협회에서 연결해준 프로팀인 샌프란시스코 베이 블랙호크스에 임대선수로 계약한다. 허나 잦은 대표팀 차출로 인해 블랙호크스에서 뛴 경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92년, 위날다는 [[분데스리가]]의 [[1. FC 자르브뤼켄]]에 임대로 입단하게 되면서 최초로 독일 1부리그 무대에서 활약하는 미국인이 되었다. 그는 독일에 상륙하자마자 자신의 실력을 과감하게 선보이며 리그 17경기동안 8골을 득점하며 단숨에 자르브뤼켄의 핵심선수로 자리잡게 된다. 그의 놀라운 활약에 매료된 팀은 USFF에 45만 유로를 지불하며 완전 이적을 채결한다. 후반기에는 다소 주춤하며 15경기에 1골에 그쳤고 팀은 최하위를 기록,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된다. 2부리그로 강등당한 이후에도 위날다는 팀에 잔류하며 1993-94 시즌 동안 14골 25도움을 기록하여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14위에 그쳐 승격에 실패한다. 시즌이 끝나고 2부리그 챔피언으로 1부리그로 승격한 [[VfL 보훔]]으로 85만 유로의 이적료에 이적한다. 적지 않은 이적료를 투입하고 데려왔기 때문에 팬들과 구단은 그에게 기대가 컸으나 정작 1994-95 시즌 동안 22경기 무득점 3어시에 그치며 먹튀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팀도 한 시즌만에 2부리그로 강등당하면서 에이스로 활약해줬어야할 위날다에게도 강등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시즌에는 8월 30일, 탈장 수술로 인해 전반기의 반 이상을 날렸고 1995년 10월 30일, 13라운드 [[SpVgg 운터하힝]]전에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반기동안 7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ynalda_San_Jose_1.jpg|width=100%]]}}} || 1996년, 고국으로 돌아온 위날다는 마침 자국의 프로 리그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산호세 어스퀘이크스|산호세 클래시]]에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4월 6일, [[D.C. 유나이티드]]와의 개막전에서 후반 종료를 앞둔 43분, 득점을 성공시키며 역사적인 MLS 1호골의 주인공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그의 결승골에 1:0으로 최초의 승리를 가져간 것은 덤이다. 이후에도 위날다는 클래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리그 27경기 동안 10골 11어시를 기록, 팀의 MLS 컵 플레이오프를 이끌었으나 8강전에서 [[LA 갤럭시]]에 의해 발목을 잡히며 아쉽게 준결승 진출은 실패한다. 그래도 자국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팀의 원년 멤버로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위날다는 그 해 미국 축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 두 시즌 동안은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잦아졌지만 나올때 마다 공격포인트를 틈틈히 적립하며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1999년, [[리가 MX|멕시코 리그]]의 클루브 레온으로 임대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위날다는 레온에서 무릎 전방십자인대와 내측 반월판이 모두 찢어지는 큰 부상을 겪게 되면서 몇 달 동안 경기에서 나서지 못하며 5경기 출전에 그치고 만다. 좋지 못한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마친 뒤 그는 2000시즌을 앞두고 마이애미 퓨전으로 팀을 옮겼으나 여전히 부상의 늪에 빠졌고 6월 7일, [[뉴잉글랜드 레볼루션]]으로 팀을 옮긴다. 위날다는 [[시카고 파이어]]와의 경기에서 클럽의 첫 플레이오프 골을 포함하여 시즌 동안 2골을 기록했다. 2001년 5월 3일, [[시카고 파이어]]로 이적한 위날다는 21경기동안 10골 4어시로 부활의 날개짓을 펼쳤고 팀을 MLS컵 플레이오프 준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1시즌 뒤 LA 갤럭시와 이적 협상을 했지만 무산됐고 USL 퍼스트 디비전의 찰스턴 배터리와 계약했다. 그러나 프리시즌 경기에서 다시 한번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단 한 경기도 소화하지 못한채 은퇴를 선언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